[천자칼럼] 지하 벙커

입력 2015-10-02 18:16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독일 베를린의 옛 황제공관 부근. 8.2m 깊이, 4m 두께의 콘크리트 지하 벙커에 히틀러의 전시 지휘소가 있었다. 2차대전 주범인 히틀러는 1945년 1월부터 이곳에 은신했다가 석 달 뒤인 4월29일 에바 브라운과 ‘벙커 결혼식’을 올리고는 다음날 그녀와 함께 자살했다.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무솔리니의 옛 자택. 와인 저장고 지하 55m 지점에 비밀 벙커가 있었다. 히틀러처럼 그도 공군의 폭격을 두려워했다. 지난해 공개된 이곳은 이중강철 방어벽과 독가스 침투 방지 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영국 런던 중심가에 있는 처칠 워룸(Churchill War Rooms). 독일군의 폭격 속에서 처칠이 전투를 지휘하던 ‘전시내각의 방’이다. 이곳에서 그는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다. 지금은 관광지로 개방돼 있다. 올해 초 처칠 서거 50주년 기념행사 개막식도 이곳에서 열렸다.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벙커가 비극의 현장인 데 비해 처칠의 워룸은 승리의 산실이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는 스탈린의 비밀 벙커가 있다. 이곳 역시 관광객이 많이 찾는데 분위기가 음습하지 않고 화려하다. 스탈린은 크렘린에서 일을 마치고 이 벙커로 돌아?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크렘린까지 연결된 터널 길이가 16㎞나 된다. 핵전쟁에 대비해 2700명 수용 규모의 지하 도시를 건설했으니 이 정도는 약과인가. 모스크바에서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지하터널로 비행기가 다닐 수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 만도 하다.

지하도시라면 베를린이 원조다. 서울 1.5배 넓이인 베를린의 전체 시설 중 60%는 지상에 있고, 40%는 땅밑에 있다. 지하에 수백 병상 규모의 대형 종합병원과 독일 전역으로 이어지는 통신용 파이프, 기차 선로, 맥주공장까지 있다. 베를린을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로 만들려던 히틀러는 공기압축을 이용한 지하 고속철도를 계획했다.

지하 벙커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백악관의 웨스트윙 지하 상황실이나 청와대의 국가위기관리센터는 물론이고 그저께 공개된 여의도 지하 벙커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민간 차원의 안전 비즈니스가 더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비보스 그룹은 독일의 지하 군수품 저장소에 고급 안전가옥 ‘유로파원’을 건설해 분양했다. 영국에서는 런던 고급 주택가 지하에 ‘안전 방 만들기’가 유행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하 캠퍼스 등 땅속 개발이 탄력을 받고 있다. 전쟁이 좌우했던 지하 세계를 첨단기술이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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